울틴슈텔름 검문소를 통과하자마자 마부는 에어리와 잉그리드를 매몰차게 깨워 마차에서 내려놓고 뒤도 안돌아보고 떠나버렸다.
다각다각 소리와 함께 엄청난 양의 흙먼지를 남기고 다시 자신들이 살던 마을로 돌아가는 마차를 보며 에어리와 잉그리드는 자신들의
로브와 옷가지가 흙먼지에 뒤덮이는 줄도 모르고 잠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이봐, 꼬마들아. 거기 계속 서있으면 사람들 지나다니는 데 방해되니 어서 비켜!"

 검문소에서 소녀들을 지켜보던 경비병들 중 제일 말단이 소리쳤다.

 흐비트라겐 왕국, 최대 규모의 도시란 명성에 걸맞지 않게 검문소를 나다닐 수 있는 길은 고작 마차 한 대가 지나다닐 정도의 폭밖에
안되었다. 그러니 하루 3교대로 지겹도록 검문소를 지키는 병사들에게는 촌티 팍팍 나는 소녀들이 길을 막고 있는 사실을 그냥
너그러이 넘어가 줄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실제로 그녀들의 뒤에는 울틴슈텔름을 빠져나가려 하는 소상단의 행렬이 길이 트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흠, 흠! 그래. 저 놈들 말이 백 번 옳다. 바쁜 이 몸께서 지나가시게 빨리 비키거라, 촌뜨기들아."

 호화로운 장식을 한 마차 안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뭔가에 짓눌린듯 답답하며 전혀 바쁜 사람의 그것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마차 밖으로 그녀들이 비키기를 재촉하는 살찐 손에 끼워진 보석 가락지들은 그의 부유함을 보여주기엔 충분했다.

"아!! 죄...죄송합니다!! 잉그리드 어서 이리와. 짐은 내가 챙겼어!"

 점점 작아져가는 마차를 바라보던 에어리는 화들짝 놀라서 뒤를 돌아 정중하게 사과를 하며 길 밖으로 나와 잉그리드를 불렀다.
잉그리드는 자신들을 촌뜨기라고 부른 상단의 중역같은 사람에게 기분이 상한 티를 팍팍 내며 일부러 느린 걸음으로 에어리를
따라갔다. 그리고는 혼잣말을 내뱉었다.

"피, 저렇게 게을러 빠져서는 마차나 타고 다니니까 손가락에도 살이 찌지."

"뭐라?! 게을러?! 뭣? 손가락? 살? 야, 마차 멈춰!!!"

 혼잣말이라 하기엔 제법 크게 들린 잉그리드의 말을 들었다고 밖에는 생각 할 수 없는 반응이었다. 이윽고 호화스러운 마차 안에서
거구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휘황찬란한 빛깔의 보석박힌 전통의복과 화려한 무늬의 신발을 걸친 남자는 씩씩대며 그녀에게
다가가 재차 물었다.

"넌 대체 뭐하는 년인데, 말을 그따위로 하는 거냐? 너 내가 누군지 몰라? 이런 촌뜨기같은 년, 보아하니 외지인이구나?"

 잉그리드는 당황한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며 대꾸했다.

"그렇게 대단하신 분께서 어찌 저희같은 두 촌뜨기 년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마차를 보며 잠시 슬퍼하는 것조차 이해를 못하시죠?"

 사내의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해졌다. 그리고 목소리가 곱절은 커져선 소리쳤다.

"이..이런 당돌한년! 지금 네년이 잡아먹은 내 시간이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지를 알아? 이런 무식한...!"

 그와 동시에 사내의 손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필시 잉그리드에게 손찌검을 하려는 모양새였다. 이를 보고 놀란 에어리는
새된 소리를 질렀다. 잉그리드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 때 갑옷으로 중무장한 경비병 하나가 튀어나와 그를 제지하며 말했다.

"나으리, 아직 어린 소녀들입니다. 노여움을 푸십쇼. 바쁘신데 어서 갈 길 가셔야지요. 저희가 따끔하게 교육 시키겠습니다."

 사내는 화를 삭히지 못해 씩씩댔지만 검문소 경비병에게, 그것도 수장급인 이에게 밉보여 좋을게 없다는 걸 아는지 이내 얌전해져 대꾸했다.

"내가 메르키프, 자네 얼굴봐서 참는거야! 요즘 울틴슈텔름 꼬라지가 대체 왜이러는지 어휴... 가자! 갈길이 태산이다!"

 곧장 소상단의 행렬은 길을 나서 검문소 밖을 통과했고 에어리는 울먹거리며 잉그리드에게 뛰어갔다. 그 모습을 본 잉그리드도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경비병은 반짝반짝 빛나는 은빛 헬름을 벗고 머리를 벅벅 긁으며 타이르는 조로 말을 꺼냈다.

"이봐, 꼬마 아가씨... 말본새를 보아하니 마법학교에 들어가려고 온 학생이지? 마법사들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내 한창 때
세계의 균열을 겪어봐서 알지만 너는 일개 마법사 지망생에 불과해. 아직 마법사가 아니란 말이다. 그말은 어른들에겐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말이지. 아까 그 상인은 우리 도시에서 셋째 가는 부자로, 세상에서 국왕과 대신들 그리고 나머지 두 부자를 제외하면
무서울 것이 없는 막강한 권력자야. 넌 내가 아니었으면 흠씬 두들겨 맞았을거다. 저런 인간이 여자아이라고 봐줄 것 같아?"

"흥, 돈이 많으면 사람을 그렇게 무시해도 되나요?? 그리고 이렇게 큰 대도시에 검문소 길이 이렇게 좁은게 문제 아녜요?"

 잉그리드는 주저 앉아 벌벌 떨면서도 또박또박 말대꾸를 해대었다. 에어리는 자신을 구해준 경비병 아저씨에게까지
기를 쓰고 대드는 잉그리드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 곁에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잉그리드야, 저 분께선 널 구해주셨잖아. 감사 인사를 드려도 모자랄 판에 그렇게 말을 하는건 예의에 어긋나는 거 같아..."

 잉그리드의 태도에 굳은 표정을 짓던 경비병 메르키프도 에어리의 말을 듣고는 표정이 한결 너그러워졌다.

"뭐, 됐다! 옆에 이렇게 예의바르고 상황판단할 줄 아는 친구가 있다면 저 작은 꼬마마법사도 보고 배우는게 있겠지! 따라오너라.
어차피 너희 오늘 묵을 곳도 없을텐데. 그러니 검문소 본관의 헛간을 내어주마. 너희 같은 소녀들이 한 해에 몇명이나 오는지 알기나 하니?? 이젠 너처럼 당돌한 아이들을 봐도 그리 놀랍지도 않아. 다만 정말 사람을 봐가면서 말을 하거라. 잔소리는 이쯤 하마.
다리 풀려서 제대로 서있지도 못하는데 뭔 말을 한들 귀에 들어오겠누..."

 그리곤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는 메르키프를 에어리가 종종걸음으로 따라갔고 입이 댓 발 나온 잉그리드가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서는 그 뒤를 따랐다. 검문소를 지나 좀 더 걷자 점점 크고 웅장한 건물들, 그리고 많은 인파에게서 느껴지는 삶의 활력 같은 것들이 가득했다. 에어리가 문득 메르키프에게 물었다.

"저, 아저씨. 오늘 도와주신 것도 감사하고 저희를 헛간에서 재워주시겠다는 호의도 감사한데요. 아직 노을이 지고 있는데 그냥 마법학교로 가서 자면 안되는건가요?"

 메르키프가 에어리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정말이지, 입학하면 학교 기념일들 부터 배워야겠구나 너희들은... 너희들의 정식 입학은 5일 뒤이고 3일뒤까지 학교는 휴교란다."

 당황한 에어리가 잉그리드에게 물었다.

"잉그리드, 혹시 넌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니?"

"당연하지, 그것도 몰랐니?"

 잉그리드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럼 넌 대체 입학할 때까지 어디에서 묵으려고 했던거야?? 그리고 왜 나한테 그런 사실을 얘기 안해줬어?"

 에어리가 당황한 기색으로 되물었다.

"그런건 상식 아니야? 너희 할아버지는 대체 너한테 뭘 알려주신거니? 그리고 마법학교 학생들에겐 당연히 기숙사가 주어져서
학기중이 아니라도 거기서 지낼 수 있지만 예비학생들은 검문소에서 제공하는 헛간들에서 잘 수 있어. 상식중의 상식이잖아!'

 틱틱대며 대꾸하는 잉그리드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의 에어리를 번갈아 보던 메르키프가 한마디 덧붙였다.

"너희는 내가 보건데, 필히 붙어다녀야 할 것 같다. 예의범절은 갖췄는데 마법사가 되기까지 갈길이 한참 먼 녀석과 정 반대인 녀석
둘이라니... 환상의 조합이로구나. 자, 다왔다. 여기가 우리 군마 전용 헛간이니 본관에 가서 출신지를 밝히고 씻고 편히 쉬거라."

 말을 마치고 에어리에게 눈을 한번 찡긋 하고는 검문소가는 길로 돌아가는 메르키프에게 에어리가 소리쳤다.

"아저씨, 오늘 저희를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학교에 입학하고나면 꼭 인사드리러 갈게요! 얘, 잉그리드 너도 빨리 인사드려."

"뭐...?? 고... 고맙네요..."

 잉그리드는 마지못해 쭈뼛대며 고맙단 말을 꺼냈다. 메르키프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어이구, 대마법사 두 분에게 감사인사까지 듣다니. 미천한 제가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요. 욘석들아. 마법사도 사람이다! 쉬거라!"

 그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마디 내뱉고는 휘휘 큰 걸음으로 두 소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에어리와 잉그리드는 바로 본관 1층에 가서
자신들은 마법학교 입교를 앞두고 있는 예비 학생이며 오늘 울틴슈텔름에 도착했음을 밝히고 바짝 마른 향기 좋은 건초 한더미씩과
헛간 한켠을 제공받았다. 만 이틀만에 깨끗한 물로 씻은 둘은 헛간에 편히 누워선 성기게 엮인 천장으로 들어오는 별빛을 보다 잠에 들었다.